섬에서 나와 맨해튼 이곳저곳을 걸어서 돌아다녔다. 걸어 다니는데 전혀 부담이 없을 정도로 안전하고 평화로웠다. 습도가 높고 여름 기온이 서울과 비슷해 후텁지근하다고 들었는데 막상 와 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다. 아직 초여름이라 그런지 덥기는 더웠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활동하는데 불편하지는 않았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는데 많은 직장인들이 도심 곳곳에 있는 공원에 나와 점심을 먹거나 담소하는 모습들이 상당히 평화스럽게 보였다. 뉴욕의 거리는 관광객 반에 현지인 반인 듯한 착각이 들 정도 많은 관광객이 많았다.
어제 들어올 때 느꼈던 음침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라 오늘 본 뉴욕은 상당히 밝고 활기차 보였다. 오래된 건물과 현대식 건물과의 적절한 조화가 도시의 분위기를 한결 높여 주는 듯했다.
월 스트리트에서 받은 뭔가 말 못 할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세계의 경제를 좌우하는 곳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상당히 긴장되고 생동감이 넘쳤다. 증권거래소 건물엔 대형 성조기가 계양되어 있고 경호원들이 건물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월 가를 빠져나와 브루클린(Brooklyn) 다리로 방향을 잡았는데 아이들이 몹시 힘들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전 8시에 나와 잠깐 지하철을 탄 걸 빼고는 계속 걸었다. 점심도 거른 상태에서. 그래도 걸으면서 보는 게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것 같아 아이들을 달래서 걷기로 했다. 정말이지 발이 부르트도록 걸었다. 물론 나도 발이 아팠으니 애들은 말할 것도 없다.
다리 중간까지 걸어가서 잠깐 쉬었다가 다시 차이나 타운으로 방향을 잡았다.
차이나 타운의 규모는 한국 타운의 규모와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그러나 거리는 지저분하고 어 수선했다. 좋은 말로 활기차다고 할 수도 있겠다. 들리는 말이 대부분 중국말이라 간혹 보이는 미국인들만 없다면 영락없는 중국이었다. 미국 어느 도시를 가든 차이나타운은 어디에나 있다. 몇 곳의 차이나타운을 다녀 보았지만 대부분 분위기 비슷했다. 복잡하고 지저분하고 규모가 크다.
별다른 볼거리가 없는 듯해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고 버스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버스가 왔다. 버스 기사가 건강한 체구의 흑인 여자 기사였는데 다소 딱딱해 보였다. 생각 외로 길은 별로 막히지 않았지만 운전은 상당히 난폭했다.
미국의 다운타운 도로는 뉴욕뿐만 아니라 어딜 가나 상당히 좁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도로가 일방통행이다. 그러다 보니 길을 잘못 들어서면 한참을 돌아야 하는 불편한 점이 있다.
우리가 탄 버스에는 노인들이 많이 탔다. 미국 버스도 앞자리는 노약자석이다. 처음에 버스를 타고 엉겁결에 앞에 자리가 있어 앉았다가 노약자석 인걸 보고는 빈자리가 많았지만 앉아 있기가 좀 그랬다. 내가 서있는 바로 앞에 앉은 어느 할머니는 자리에 앉자마자 게임기로 게임을 한다. 게임에 몰입한 할머니의 모습이 마냥 신기해 보였다. 버스 차비는 아침에 구입한 매트로 카드로 했다.
버스에서 내려 호텔로 가는 도중 예지가 한국 제과점에서 팥빙수가 먹고 싶다고 했다. 도희와 집사람은 싫다고 해서 먼저 호텔로 보내고 예지와 나만 한국 빵집인 고려당으로 들어갔다. 빵집의 분위기부터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까지 정말로 서울 강남의 어느 빵집을 와 있는 듯했다. 빙수의 맛도 좋았다. 그런데 가격이 많이 비쌌다. 뉴욕의 물가가 비싸다고는 들었지만 정말 비쌌다.
미국의 빵들은 엄청나게 달다. 처음 미국의 빵을 먹었을 땐 설탕을 씹어 먹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달았는데 요즘은 많이 적응이 되었는지 처음보단 그렇게 달게 느껴지지 않는다. 평소에 빵을 좋아하다 보니 늘 한국 빵이 먹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워싱턴 주 시애틀 지역은 한국 빵집은 있는데 빵 맛은 영 아니다. 생김새나 모든 게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맛보던 그런 맛이다.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궁금해서 몇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이곳에 이민 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국을 떠날 때를 시점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고정된단다. 시애틀 타코마 지역은 이민 역사가 길다 보니 아무래도 오래전에 이민 온 분들이 많다. 그래서 빵도 그때 그 맛을 찾지 요즘 맛으로 만들면 안 팔린다며 이해가 될 듯 말듯한 이야기를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아무튼 제대로 된 한국 빵을 먹고 싶었는데, 이 참에 간식으로 할 빵을 잔뜩 사 들고 나왔다. (최근에 한국에서 유명한 프랜차이즈 빵집부터 다양한 빵집들이 생겨 맛부터 모든 것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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