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Virginia)
남한보다 조금 넓은 크기를 가지며 주 전체 인구는 약 700만 명 정도이다. 우리 교민의 수는 6만여 명이 있는 것으로 안다. 미국에 건설된 최초의 식민지이며 건국 13개 주에서 가장 부유한 주였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비롯 수많은 대통령을 배출(초대 대통령 이후로 7명의 대통령을 더 배출) “Mother of Presidents”라는 별명과 “기사의 주”라는 별명 등 두 개의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 두 별명은 민주주의 기풍과 귀족적인 혈통을 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버지니아 주는 노예를 사용한 최초의 주이기도 하다. 켄터키 주와 웨스트 버지니아 주가 버지니아 주에서 독립된 주이다. 버지니아 주도인 리치먼드(Richmond)는 남북 전쟁 시 남부 연맹의 수도였다.
노우스 캘로라이나 (North Carolina)
남한의 1.5배 정도의 크기로 인구는 약 800만 명 정도이다. 우리의 교민 수는 2만여 명이며 여름엔 따뜻하고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은 기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방에 가장 늦게 합류를 했지만 병사 지원은 가장 많이 한 주로 알려져 있다. 주 전체 수입의 중심은 농업이며 목화와 담배 생산은 미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인구도 남쪽에선 텍사스 다음으로 많으나 소농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 주 전체 수입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남부의 주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주이며 흑인에 대한 대우가 비교적 공정한 주로 알려져 있다. 예쁜 집들과 거리 그리고 옛 풍경 등 다른 주처럼 세팅이 손쉬워 영화 프로덕션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라 한다.
사우스 캘로라이나 (South Carolina)
남한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주 전체 인구는 400만 명 정도다. 우리 교민의 수는 6천여 명 정도라 한다. 1670년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고 찰스 1세의 이름을 따서 Carolina라고 불리기 시작한다. 1710년 South와 North로 분리되고 그 후로 유럽에서 많은 이주자들이 들어오며 농사 재배를 위해 다수의 흑인 노예들이 들어와 1720년에는 주 전체 인구의 2/3가 흑인이었다고 한다. 연방 정부 정책과 항상 반목을 하던 사우스 캘로라이나 주는 1860년 남부 주로선 처음으로 연방을 탈퇴한다. 1861년 북부 연방의 사우스 캘로라이나의 Fort Sumter의 공격으로 남북전쟁이 발발한다. 전쟁으로 많은 피해를 본 후 경기는 점점 침체를 거듭한다. 20세기 초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 산업이 발달하고 관광산업도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조지아(Georgia)
주 면적은 남한의 1.5배 정도고 인구는 8백만 명 정도다. 교민 수는 4만여 명이다. 주명은 영국의 조지 2세의 이름에서 따왔다. 조지아도 건국 13개 주 중에 하나이며 정착 민들은 풍부한 자원으로 번영하게 된다. 주의 주도 애틀랜타는 미국 남동부 지역의 상업 중심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조지아는 인디언들에게 한 맺힌 주이다. 버지니아를 비롯 지금의 남동부 지역은 원래 체로키 인디언의 생활 터전이었다. 1838년 인디언의 여자, 어린이를 포함 17,000여 명의 인디언들에게 오클라호마까지 이주를 명령한다. 이주 도중 4,000여 명이 죽었다고 한다. 이 길은 Trail of tears로 일컬어져 인디언 멸망사의 어두운 역사로 기록된다. 코카콜라의 본사가 애틀랜타에 있으며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조지아 출신이다. 조지아는 다른 동부 해안 주들과 마찬가지로 해안 평야, 고원과 애팔래치아 산맥의 일부가 걸쳐져 있다. 산맥의 높이는 높지 않지만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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