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무덥게 시작한다. 오픈 시간에 맞춰 다른 날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 모텔을 출발하여 시 월드로 향했다. 아침인데도 기온은 꽤 높은 편이다. 모텔에서 한 10분 정도 가니 시월드가 나왔다. 시간도 그렇고 해서 그냥 가려다 아이들 때문에 마지못해 들리긴 했지만 기분은 썩 내키지 않았다.
9시에 개장인데도 벌써 입구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원 입구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미국 사람들이 성조기를 향해 멈춰 선다. 미국의 국가가 나오고 있었고, 미국인들은 그들 국기인 성조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국기 게양 식과 하기식에 보던 풍경과 너무 똑같았다. 이런 모습은 미국에 와서 처음 본다. 업무 시작 전에 공원 국기 게양식 행사를 한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듯하다는 걸 가끔 느낀다. 이런 놀이공원에서도 은연중에 국가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특별한 날이면 거리마다, 차마다 성조기 물결로 춤을 춘다. 지난 911 때도 온통 거리가 성조기로 물들었다. 대형 성조기를 일반 승용차는 물론이고 버스나 소방차, 오토바이 할 것 없이 달고 다녔다. 이방인인 우리는 다소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겉으론 상당히 자유스럽고 때론 자유를 넘어선 방종에 가까운 생활들을 하는 듯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와 자신들이 세계 최고라는 자신감, 자부심이 좀 과하게 넘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한 번은 도희와 야구장을 갔는데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중간중간 애국심을 강조하는 안내 맨트와 화면이 중앙 스크린에 등장했고, 많은 미국인들이 환호와 박수로 답하는 걸 보았다. 이것이 그들의 저력이며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이곳 플로리다는 다른 주에 비해 유난히 성조기가 많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성조기를 도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온 거리가 성조기로 출렁거린다. 자동차 판매를 하는 곳에는 전시되어 있는 차마다 소형 성조기가 달려 있고 짧은 간격으로 매장 전체에 대형 성조기 달려있다.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독립기념일이 며칠 전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이곳이 부시 미 대통령 동생이 주지사로 있는 것이 이유가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해본다. (2003년 당시는 조지 부시 대통령 동생이 주지사였다)
시 월드 티켓을 구입하는데 4명에 211불이다. 정말 장난이 아니다. 아이들한테 내색은 안 했지만 정말 죽을 맛이었다. 공원 지도를 받아서 짧은 시간 내에 돌아볼 수 있도록 코스를 잡고 서둘러 보기로 했다. 오늘도 도희에겐 다 볼 수 없다는 것을 이해시키고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동물 공연이 11시 이후에 시작한다. 골치가 아파 왔다. 이곳을 얼른 돌아보고 마이애미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비싼 돈 내고 그냥 갈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빨리 보는 것을 포기했다.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볼 수 있는 건 다 보도록 해서 돌아다녔다.
동부로 들어와서 촬영다운 촬영을 못한 지 꽤 지나서 그런지 마음이 조급해진다. 줄지 않은 필름들을 보면서 한숨만 나온다.
더운 날씨 때문에 차 트렁크에 있는 필름들이 걱정이 되어 서 볼거리가 있어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예상은 했지만 돌고래 쇼가 시 월드의 절정 같았다. 커다란 고래가 원형으로 돌면서 꼬리로 물을 관중들 속으로 뿌리면서 다닌다. 집사람과 나는 물을 피해 높은 곳에서 보고 예지와 도희는 맨 아래서 본다고 앉아 있었는데 끝나고 올라오는 모습이 가관이다.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 같은 모습인데 시원하긴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3시 정도에 대부분 둘러보고 공원을 빠져나와 마이애미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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